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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 글 한 편

말 한 마디, 글 한 편

김동길

2005.08.29

의왕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을 특별면회하려고 구치소 소장실에서 기다리던 중 소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그는 자기가 안양교도소의 총무과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거기 수감되어있던 나의 신세를 많이 졌다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곳에 긴급조치로 수감되어 있던 학생들이 말썽을 일으키고 난동을 부릴 때 교수이던 내가 학생들을 달래가며 사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힘써 준 사실에 고마운 생각을 금치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느닷없이 이렇게 물었다. “교수님은 골프를 치시나요?” 그 질문에 나는 70년대 초 <동아일보> 칼럼에 골프를 시작하는 족속들을 호되게 비난한 글을 쓴 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골프채를 잡아 본적도 없다고 하였더니 그 소장 왈, “그렇지 않아도 제가 그 글을 읽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디서 한 말 한 마디, 어디에 쓴 글 한 편이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도 생생하게 기억이 된다는 사실이 무섭다고도 느껴진다. 만일 그 소장에게 “나도 골프를 좀 칩니다”라고 대답하였더라면 그는 속으로 나를 비웃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동아일보>의 그 칼럼을 읽었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겠지만.

골프가 매우 흔해진 오늘도 골프채를 잡지 않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하여 나는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낸 적이 있다. 말 한대로 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말 한대로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나는 믿는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