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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원순과 함께 '한진 중공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희망시국회의 200선언' 참여 |
金泌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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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곽노현(郭魯炫) 교육감을 당선시키기 위해 종북(從北) 인사들이 총출동했었다. 주요 인사로는 청화(靑和, 승려)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상임고문, 백낙청(서울대 교수)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명예대표, 함세웅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 김상근(목사)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 등이 좌파진영의 교육감 후보 단일화를 중재했다. 이 가운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공동대표 출신의 咸世雄(함세웅, 1998년 참여연대 자문 역임) 신부는 국보법폐지국민연대 고문, 송두율석방대책위 상임대표, 한총련 합법화대책위 상임대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국보법철폐․주한미군철수․연방제 통일을 주장해온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 1991년 출범) 지도위원으로 활동했던 親北인사이다. 함세웅이 몸담았던 전국연합은 2001년 9월22~23일 충북보람원수련원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에서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 건설하자’는 이른바 ‘군자산의 약속’을 채택했던 조직이다. 당시 오종렬(現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연방통일조국을 실현하는 힘은 우리 위대한 민중들에게 있지만 그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굳건한 민족민주전선이다...(중략) 식민지 지배질서가 온전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전민중의 전면적 항쟁은 미국의 식민지배와 분단장벽을 허물고 자주와 민주, 통일의 새 세상을 안아올 수 있는 지름길”이라며 남북연방제(南北聯邦制)로 통일하자고 주장했다. 전국연합이 주장하는 南北聯邦制統一(남북연방제통일)은 국보법철폐, 주한미군철수 및 소위 ‘친미수구세력’으로 표현되는 보수 세력을 척결 또는 매장한 뒤, 북한의 사회주의혁명역량에 加勢(가세)·結集(결집) 내지 連北(연북)·連共(연공)하는 赤化(적화)통일방식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시절 청와대 고위직 비서관을 비롯, 열린우리당·민노당에 다수의 국회의원을 진출시켜 온 전국연합은 2005년에만 ▲5월15일 광주미군철수집회 ▲7월10일 평택 미군철수집회 ▲9월11일 인천 맥아더동상철거집회 ▲11월15일·21일 전국농민대회 ▲11월18일 부산APEC반대집회 등 대규모 반미(反美)활동을 사전기획·실행했다. 위와 같은 좌파 인맥을 배경으로 함세웅은 2002년 7월18일 ‘한총련합법적활동보장을위한종교인1천인’ 선언, 2004년 3월11일 ‘송두율교수의무죄석방을촉구하는사회원로·인사선언’, 2003년 10월23일 ‘송두율교수석방을요구하는시민사회1000인 선언’, 2004년 9월16일 ‘국가보안법폐지를촉구하는각계인사공동선언’, 2010년 12월13일 4대강 사업 관련 정진석 추기경 비난 기자회견 및 성명 발표(제목: 시대를 고민하는 사제들의 기도와 호소), 2011년 7월22일 ‘한진 중공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희망시국회의 200선언’(김상근, 박원순, 백낙청, 청화(승려) 등 참여연대 출신 인사들과 함께 참여) 등 각종 左派운동에 참여해왔다. [사진] 1984년 서울 강변도로에서 횡단하던 일곱 살 어린이가 자동차에 치여 숨졌다. 사고차량을 운전한 사람은 입만 열면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쳤던 신부 함세웅이었다. 당시 국내 언론은 이 사건을 사회면 1단 기사로 취급하거나 아예 다루지 않았다. 경찰도 이 성직자를 불구속 입건하는 데 그쳤다. 도로로 뛰어든 어린이를 피하지 못해 일어난 단순사고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효순·미선양 사망사고 당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살인 미군의 회개를 촉구한다’면서 단식기도회를 열었다. 이와 함께 함세웅은 2004년 3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에서 당시 구속수감 중이었던 송두율을 제3회 안중근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당시 기념사업회는 “송 교수의 고난이 민족의 고난의 현장을 상징하는 한 지표로서 안중근 의사의 애국애족과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정신을 체현하고 있다”면서 선정 이유를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구체적으로 “송 교수가 다원적이고 대화합의 시대에 폐쇄적이고 분열적인 사고와 법규로 재단당하여 과거 정약용이 겪었던 것과 같은 부자유의 고난을 되살고 있다”면서 송 교수를 “정약용과 그의 친구들의 21세기 동지”라고 주장했다. 기념사업회는 또 “우리 민족의 문화와 사상의 한 횃불이자 민족의 갈림을 잇는 데 이바지할 ‘진정한 접점’으로서 송두율 선생이 우리의 역사를 자유롭게 견인할 그 날이 하루속히 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면서 송두율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함세웅은 또 2004년 10월9일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인 ‘열린 세상과 오늘’에 출연, 국보법폐지반대를 “성서에 대한 문자적 맹종”, “인간을 법체계에 예속시키는 현대판 우상” 등으로 비유하며 “그런 것이 예수님을 죽이는 구체적 사례”라고 주장했었다. 그는 같은 해 9월16일 ‘9.9국가원로시국선언’에 대응, 이른바 ‘민주화원로71인선언’을 갖고 “보안법 고수론자들은 일제와 독재의 잔존세력”이라며 “지금이야말로 보안법 폐지를 위해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함세웅이 공동대표를 지낸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2002년 ‘한(조선)반도 평화선언’을 통해 “6·15선언이 한(조선)반도에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최선의 현실적 방안임을 인정한다”면서 “북의 고려연방제와 남의 국가연합제(남북연합제) 통일방안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대중적 논의를 통해 한(조선)반도에 필요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던 종교단체이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의 또 다른 유명 인사로는 현재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주장하며 소위 '평화미사'를 주도해온 문정현-문규현 신부 형제가 있다. 이들 형제는 그동안 反美-從北단체 시위에 빠짐없이 등장하며 맹활약을 해왔다. 문정현은 2000년 주한 美공군 공대지사격 훈련장인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사격장폐쇄를 주장하며 ‘매향리美軍국제폭격장폐쇄 범(汎)국민대책위원회’의 상임대표를 맡았던 인물이다. 2002년 5월22일 경북대 ‘제1기 통일아카데미’ 강연에서는 “나 역시 북한을 방문하였을 당시 만경대에 가서 ‘김일성 장군님, 조금만 오래 사시지 아쉽습니다’” 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2005년 2월22일 만들어진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에는 문정현이 從北인사인 오종렬·홍근수·정광훈(사망)·한상렬·문경식 등과 함께 상임대표를 맡았었다. 문정현의 동생 문규현은 ▲1989년 임수경과 함께 방북, 국보법위반으로 징역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1998년 평양통일대축전에 참가해 김일성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궁전 방명록에 “김일성 주석의 영생을 빈다” 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지 못한 단체로 천주교회의 공식 조직이 아니다. 다른 非(비)인준 천주교 평신도 단체인 나라사랑기도회 등에서는 사제단을 “주교회의 인준을 받지 않은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교회 정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김필재(金泌材)/spooner1@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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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25, 23:40 ] 조회수 : 4918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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