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노무현이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 서해북방한계선(NLL)을 공동어로수역으로 거론하여 그 미끼로‘10.4남북공동선언’이라는 포획물을 획득하였던 것은 선배 매국노 김대중의‘신한일어엽협정’에서 그 발상을 얻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 발상은 노무현 단독 발상일까? 회담에 같이 참석한 김만복 국정원장일까? 이재정 통일부 장관일까? 머리 나쁜 문재인 일까?
김대중은 1998년 11월 8일‘신한일어업협정’을 국민에게 충분한 설명 없이 협정하고 국회에서도 날치기로 1999년 1월 6일 통과시켰다. 그러자 독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은 한일공동 관리수역이 되어 졸지에 한일‘공동어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본 어선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떼로 몰려오니 조업 활동에 밀려 출항을 포기한 울릉도의 어선은 무려 3000여척이나 되었던 것이다. 이는 독도영유권마저 위기를 초래한 사건이다.
일터를 빼앗긴 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현실에 울릉도 어민들은 손을 놓고 충격과 실의에서 헤메였다. 협정 후 독도는 자연보호 차원에서 출입금지 구역으로 선포 되었으며 독도에 살고 있던 주민도 울릉도로 쫓겨 갔다. 이어 김대중정권은 국민적 원성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독도를 군함으로 봉쇄하여 그 어느 누구의 접근도, 취재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난 것처럼 울릉도에 놀고 있는 3000여척의 어선을 어려운 북한에다 갖다 주면 얼마나 좋은 일이 되겠느냐고 말하였던 악마였다. 어선 값을 지불한다 해도 말이다. 내가 보는 김대중은 적과 아군이 따로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피눈물 없는 권모술수의 달인이라도 고향 전남 신안군의 하의도에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렇게 매정한 말은 안했을 것이다.
김대중 개인적으로 일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슨 빚이 얼마만큼 있는 가 몰라도 우리의 영해에 속한 황금어장을 공동 사용케 한 것은 마치 전쟁배상금을 무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그는 친일의 최고봉이요, 매국의 아버지다. 웃음 뒤에 감추어진 독재자 김대중의 음모는 누구보다 은밀하였기에 국민이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들도 많았다. 그는 지킬과 하이드였다. 그에게 수여한 노벨평화상은 언젠가 노벨의 수치가 될 것이다.
그는 89년 평민당 총재 시절 일본 대사관에 마련 된 히로히토 일왕의 분향소를 아무도 몰래 슬그머니 찾아가 90도 각도로 참배하는 모습을 좌익 경향신문에 포착되어 비난을 받았던 수상한 행보를 보였었다(경향은 좌익인데도 김대중을 빨갱이라 까발리는 손총무 같은 사람도 있었던 곳이라 완전 좌빨 판단은 조금 더 유보한다) 김대중의 일본사랑은 어찌 된 연유일까?
김대중은 미국에서 망명정부 수립을 기도하는 반국가단체‘한민통’을 결성해 일본 지부를 결성하던 중에 73년 8월 한국 정보부에 납치당한다. 그전부터 북한과 교류한 행적을 일본 정보국이 소상히 알고 있는 것도 약점인데 현해탄 납치에 즉각 대응하고 방해하였으니 빚을 진 김대중과 일본의 관계는 각별하다고 아니할 수가 없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일본이라면 거품을 물고 그 즉시 뒤로 자빠지는 좌익들이 김대중만큼은 친일 명단에 없는 예외 품으로 분류시켰다.
김대중의‘신한일어업협정’이후 이 나라 대통령들은 한일 관계에서 중요한 독도영유권 문제는 그냥 넘기고 신사참배와 위안부 문제만 인기몰이용으로 물고 늘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대통령 이명박이 2012년 8월 10일 임기 만료 6개월 전에 대통령으로서는 한국 최초로 독도를 방문하여 한국령(韓國領)이라고 한자로 새긴 바위 옆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던 것이 독도영유권 주장에 대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긴 했다.
신 한일어협 협정 후 외국에서 발간하는 세계지도는 동해가 일본해로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하였다. 노무현은 2004년 7월 제주도에서 열린 고이즈미와의 한일정상회담 기자회견장에서 독도를 서슴없이‘다케시마’라고 하였다.“오늘은 다케시마 문제에 관해서는 좀 적당하게 넘어가고..."하였던 것이다. 이런 배알 없는 마인드였으니 김대중의 독도 수역 갈라 먹기 식으로 노무현도 NLL(서해북방한계선)을 북한과 공동어로수역으로 갈라 먹기 하려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