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펌 복사

엑스트라 아르바이트 경험담과 임수경

엑스트라 아르바이트 경험담과 임수경
이름 : 훼드라날짜:2005-10-11 18:26:09
90년대 후반에 엑스트라 아르바이트(이하 ' 알바 '로 약칭)를 2-3년정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처음 하게 된 일은 연예,오락프로의 방청객중 한명으로 박수나 환호성등으로 그 프로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역할이더군요. 약 50명 정도인 분위기용 방청객 알바들에게 PD는 대략 이런 주문을 했었습니다. 프로진행중 사회자가 출연자를 소개하거나 출연자의 이야기가 마무리될때쯤엔 박수나 환호성등을 질러주고, 특별히 요즘 잘 나가는 연예인인 경우엔 환호성을 좀 더 세게 지르거나 약간 과장된 호응을 보여주기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출연자가 썰렁한 이야기나 분위기에 안 맞는 이야기를 했을땐 야유를 보내거나 인상을 찡그려도 무방하다고 주문했습니다.


방청객 알바를 처음 가보았을 때 그렇게 녹화시간 두시간정도를 앞두고 PD가 보내는 사인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수십차례 예행연습을 했습니다. 아마 요즘은 연예,오락프로에 나오는 방청객 연기자들의 행동이 다 사전에 준비되고 연출된것들이란걸 모르는 출연자나 시청자는 거의 없을겁니다.


89년 평양축전때 임수경씨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평양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탈북자의 증언이 한 일간지에 소개가 되었더군요. 준수한 외모를 가진 대학생들을 우선으로 선발했고 게다가 영양실조인 몸상태를 불리기 위해 일주일간 강제로 먹이고, 그리고 임수경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녀가 입장하면 박수와 함성을 단상에 올라서면 좀 더 크게 박수와 함성을 치라고 하고, 김일성을 찬양하면 환호성까지 지르고 혹여 북한체제를 비판하면 인상을 찡그리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사전 교육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읽고나서 제가 든 느낌은 이랬습니다. " 푸허허...이거 완전히 엑스트라 알바아냐 그럼 ? "


' 평양은 거대한 세트장 '이라고 말한 탈북자가 있었습니다. 3년전쯤인가 NK조선 게시판엔 20대 초반의 평양출신 탈북자가 이런 글을 쓰기도 했더군요. 고등중학교때 하루는 외국 요인이 평양을 방문해서 그 사람에게 보이기위해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제끼고 학교학생 전원이 대동강으로 나가 유람선을 타고 노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고 합니다.


평양은 거대한 세트장이고 TV화면에 비쳐지거나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돌아다니며 만나게되는 평양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엑스트라란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요즘은 엑스트라란 말을 ' 보조연기자 '란 우리말로 대체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만, 평양은 사람이 사는 도시가 아닌 보조연기자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우린 보아왔던겁니다. 지금까지요. 물론 그 거대한 세트장의 연출자는 김정일 PD입니다.



평양의 아리랑 공연을 보고온 사람들의 그 웅장함이나 예술성에 놀랐다는 감상글을 몇편 접하게 되었습니다. 뭐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평양이란 거대한 세트장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각양각색의 보조연기자들을 외국 방문객이나 신문,방송 기자들앞에 내어놓는 김정일씨라면 그만한 예술(?)작품쯤 왜 못만들어 내겠습니까.


하지만 아리랑과 같은 집단체조의 이면을 증언한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경악하게 됩니다. 자정까지 밥까지 굶어가며 연습을 하고, 한창 성장,발육기인 어린 학생들까지 온갖 기이한 체조동작을 연습하거나 무거운 매스게임 그림판을 쉴새없이 움직여야하고...


올림픽이나 월드컵때 우린 개최국의 웅장한 개,폐회식 행사를 지켜보게 됩니다. 그런 국제적인 스포츠 축제에서 대개는 자국의 위용과 오랜 전통과 역사를 세계인들에게 뽐내기 위함이지요. 하지만 올림픽 개회식 행사를 준비한답시고 어린 학생들을 그런식으로 혹사하는 나라가 있었다면 아마 전 세계에서 대대적으로 그 나라 올림픽 보이콧 운동이라도 벌어졌을겁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개최한 국가중 대다수는 선진화된 민주국가들입니다.


1989년 평양 대학생들 앞에 나타난 임수경. 그녀는 평양에 나타난 슈퍼스타였고 그녀를 보러나온 대학생들은 분위기용 엑스트라였습니다. 사람이 사는곳을 다녀온게 아니라 독재자가 연출해낸 기만극에 한껏 놀아나고 온 것이었습니다.


임수경씨가 평양에 다녀와 수감생활을 한 뒤 펴낸책 제목이 ' 어머니 ! 하나된 조국에서 살고 싶어요. ' 였던가요. 하나된 조국에서 살고싶은 마음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조국에서 살고 싶습니다. 독재자가 연출해내는 기만극에 동원되는 보조연기자들을 만나는곳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람사는 이야기를 마음놓고 나눌수 있는곳. 선거때가 되면 ' 넌 누구 찍을건데 ? '같은 질문을 주위사람들과 주고받기도 하고 속상하거나 울분이 터지는 일이 있으면 술이라도 한잔 나누며 속마음을 마음껏 토로하기도 할 수 있는곳.


오늘도 연변의 탈북자 여덟명이 한인학교에 진입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들은 영사관으로 신병인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왜 북한을 탈출했겠습니까 ? 몇 년동안 은둔생활을 해야만 했겠습니까. 더 이상은 이런일로 가슴아파하거나 고민하는일이 없는 그런 세상. 그렇게 하나된 조국에서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