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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우상체제 때문에 개혁 개방할 수 없다

김정은은 우상체제 때문에 개혁 개방할 수 없다
30년 간 중국의 실패한 설득이 개혁·개방

김정은 정권의 개혁·개방 운운하는 주장은 헛소리다. 소위 북한전문가들의 이 같은 주장은 알고도 하는 것이다. 북한체제를 유지시켜 그 힘을 지렛대로 남한에서 정치적 권력을 확대해 볼 요량이다. 이런 사악하고 이기적인, 얕은꾀가 언제까지 유통될 지 지켜볼 일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중국식 개혁·개방이 성공한 첫 번째 조건은 ‘개인 偶像化(우상화) 폐지’였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毛澤東)의 大躍進(대약진)운동 실패 이후 개혁·개방을 들고 나왔다가 지방으로 쫓겨났고 결국 마오쩌둥 사후 개혁·개방을 추진할 수 있었다. 지도부가 교체됐고 자립경제가 가능하고 대안권력이 없었던 특수한 환경이 소위 중국식 개혁·개방의 전제조건이었다.

북한은 모든 면에서 중국과 다르다. 무엇보다 “김일성이 나뭇잎을 타고 대동강을 건넜다”고 가르치는 북한에서 개인 우상화 폐지는 북한체제 붕괴와 직결된다. 북한의 본질적 변화는 김정은과 그를 에워싼 김일성·김정일 기득권 세력이 제거된 뒤에나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민들의 봉기에 의해서 이뤄질 수 있다.

중국식 개혁·개방은 중국이 북한에 30년 넘게 설득하다 포기한 일이다. 중국 지도부는 1982년 長春(장춘)에서 있었던 덩샤오핑·김일성 사이의 회담을 효시로 “중국에 나쁜 것은 북한에도 나쁘고 중국에 좋은 것은 북한에도 나쁜 데 개혁·개방은 중국에 좋으니 북한에도 좋은 것”이라는 ‘脣亡齒寒論(순망치한론)’에 입각해 중국식 개혁개방 수용을 끈질기게 권유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김정일을 여러 차례 설득했다. 김정일은 사망 직전 3년 동안 7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자신의 死後(사후)에 대비한 대규모 경제지원을 호소하는데 중국이 요구한 조건은 ‘개혁·개방 수용’이었다. 물론 김정일은 끝끝내 이를 수용할 수 없었다. 이유는 하나. 중국식 개혁·개방 수용이 우상화 파기와 金祖(김조)의 몰락을 초래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김정은은 최근 개혁·개방을 거부한 채 대내적으로 ‘김정일애국주의를 구현하여 부강조국건설을 다그치자’고 주장하는데 이 ‘김정일애국주의’가 바로 중국식 개혁·개방 거부이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중국 지도부가 30년 간 설득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변하고 있다며 더 많은 물자를 퍼 줘야 한다는 얼치기 북한 전문가들 주장은 妄發(망발)에 가깝다.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의 개혁·개방 추진에 대한 소위 ‘북한전문가’들도 있지만 이것도 근거 없는 환상이다. 對北情報(대북정보)업무를 26년 간 담당해 온 진짜 북한전문가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소장은 8월27일 한 언론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성택은 수양대군이 될 수 없습니다. 김정은·김경희·장성택은 공동 운명체입니다”

김정은 정권의 운명은 모래시계다.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며 남한을 상대로 극단적 모험도 벌여갈 테지만 정권의 붕괴는 필연이다.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은 2011년 12월7일 일본 도쿄신문 편집위원 고미요지(五味洋治) 씨에 쓴 이메일에서 “북조선에선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생존하려면 고위층에 상납을 하지 않으면 안 되고 뇌물의 액수가 날마다 올라간다”며 “이런 부패한 시스템은 반드시 무너진다”고 적었다. 김정남은 또 “개혁 개방을 하지 않으면 북한이 망하고, 개혁·개방을 하면 하면 정권이 망한다”고 덧붙였다. 개혁·개방을 하건 안 하건 김정은 정권의 붕괴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은 것은 한국의 길이다. 어차피 망할 체제 빨리 망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서 자유통일로 가야 한다. 또 다시 가증스런 햇볕정책을 재개하고 연방제·연합제 방식으로 남북이 묶여 버리면 한국도 反美(반미)의 배에 올라타 국제적 고립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한국사람이 선과 악을 분별해 악의 편이 아닌 선의 편에 서는 여부가 몰락이 결정된 북한과 한 배를 타는 여부를 결정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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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01일 12시0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