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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을 가평 산기슭에 모시고

2011/04/30(토) -누님을 가평 산기슭에 모시고- (1095)

아버님, 어머님을 모신 선산이 경기도 시흥에 있었습니다. 누님도 거기 모시고, 돌아가신 어른들의 일은 일단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국의 근대화의 물결은, 세상을 떠난 어른들의 오랜 잠을 깨웁니다. 국가의 수용령을 거부할 수 있는 개인은 없습니다. 모실 곳을 찾지 못해 오래 고민하였습니다.

나의 누님은 한평생을 이화대학에 바친 분인 까닭에, 학교당국은 경기도 가평에 마련된 이화 수목원에 모시기를 원했고 나는 “평범한 한 여성의 삶인데 그저 집안 일로 끝내겠다”하며 그 요청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김옥길의 제자들은“선생님은 ‘이화의사람’이니 김활란 박사님이 묻히신 같은 곳에 묻히셔야 합니다”라고 고집하여 내가 마침내 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뼈항아리의 ‘안장식’이 이화의 많은 식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로 엊그제 이화 수목원에서 있었습니다. 비는 멈추었으나 쌀쌀한 봄 날씨였습니다.

나는 일본군에 끌려갔다 8,15를 23일 앞두고 소련과 만주 국경 어디에서 목숨을 잃은 도길형의 뼈가, 작은 나무 상자에 담겨 돌아오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닙니다. 그 형을 그리며 내가 이렇게 시 한 수를 읊은 적이 있었습니다.

노래, 그림, 운동에 뛰어난 재주
착하고 말이 없던 형은 갑자생
일본군에 끌려가 소.만 국경에
스물두 살 짧은 생을 마감하였지

선교리 너머 있던 일본군부대
영장들고 찾아가던 형의 뒷모습
마지막 돌아보며 빙그레 웃던
그 얼굴은 지금도 쓰라린 추억


궂은 비 내리던 평양역에서
아버님 가슴위엔 흰 상자하나
하염없이 흐르던 그 날의 눈물
오늘도 생각나서 눈물집니다.


우리가 평양에 살던 때 큰아버님 한 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 날 온 식구가, 공동묘지가 있는 서장대로, 상여 뒤를 따라 걸어갔습니다. 그때 내 누님은 이화여전 학생이었습니다. 하관식이 끝나고 인부들이 삽질을 하여 그 위에 흙을 덮어 분묘를 만드는 것을 지켜보면서 누님이 내게 하신 이 한마디를 내가 지금도 기억합니다. “동길아, 사람은 죽으면 다 저렇게 한 줌의 흙이 되는거다”

나는 엊그제, 한줌의 재가 된 누님을 가평의 산자락에 묻고 돌아오면서, 중학생이던 나에게 일러주신 누님의 그 말씀을 70년뒤에 또 한번 되새겨 보았습니다.

“동길아, 사람은 죽으면 다 저렇게 한 줌의 흙이 되는거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